신앙의 삶 속에서....

민현이 남아공 여행기

undertree 2009. 8. 8. 12:42

 
케이프타운 ‘성령 가족 축제’에 참가하다.   

한국의 더위와 장마소식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추운 겨울 날씨와 싸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께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8일까지의 저희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아이들이 겨울방학을 했고 또 한인 선교사들을 위한 가족 축제가 케이프타운에서 있어서 몇 가지 목표를 가지고 참석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이 여행을 계획 할 때는 황장로님께서 빌려주신 아주 좋은 BMW 시리이즈 5가 저희에게 있었기에 자신 있게 승용차로 다녀오리라 마음 먹었더랬습니다. 하지만 막상 저희가 여행을 떠날 즈음에는 이 근사한 차는 주인에게로 돌아간 다음이었고 어쩔 수 없이 저희가 쓰고 있던 말썽 많은 94년산 차를 가져 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불안감이 없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많은 비용을 들여 차를 고치고 점검을 한 후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출발하는 첫 날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새벽 일찍 출발하여 중간에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선지 얼마지 않아 차가 열이 나기 시작하였고, 이상한 조짐에 속력을 줄여 가는 중에 그만 오른쪽 뒷바퀴가 굉음과 함께 파열되었습니다.  아마 속력을 늦추지 않았더라면 차가 뒤집혔을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고속도로에 차를 세우는 것이 위험하다 하여 금기 시 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차를 세우고 타이어를 갈아 끼우기 위한 작업을 하였습니다.

남편은 계속 걱정 말라고 예비 타이어가 있으니 갈아 끼우면 될 것이고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우리를 안심시켰습니다.  트렁크 제일 아래 있는 예비 타이어를 꺼내기 위해 트렁크 속에 있던 모든 짐을 길바닥에 내려놓고 타이어를 갈아 끼우기 위한 작업을 시작하였지만, 한번도 직접 타이어를 갈아 본적이 없는 형제로서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날씨는 적당히 춥고 우리가 있는 지점조차 알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습니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저는 용기를 내어 지나가는 차량의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두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차량을 세우려 했습니다.
남아공의 범죄율을 생각하면 어떤 차량도 우리를 돕기 위해 서지 않을 것이라고 아이들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는지라 기도하며 계속 도움을 요청하던 중에 우리를 스쳐 지나가던 한 차량이 고속도로에서 거꾸로 획 돌아서 우리를 향해 왔습니다.
그리고 마치 특공대원처럼 젊은 한 백인이 무언가 손에 연장을 들고 우리 차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이어 젊고 아름다운 그의 아내와 예쁜 어린 딸이 차에서 내려서 우리에게로 왔습니다.  아주 능숙한 솜씨로 우리 차의 타이어를 갈아 주고 가져온 펌프로 타이어의 공기압을 맞추어 주었습니다. 그는 우리를 돕느라 더러워진 손을 닦도록 물과 수건을 가져왔어도 괜찮다며 부드럽게 거절을 하고는 우리에게 불완전한 예비타이어를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가까운 지역과 가게까지 안내해주고는 떠났습니다.  형제가 목사라고 소개하자 우리 교회를 한번 방문하겠다는 인사와 연락처를 남겨주었을 뿐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한숨을 돌린 우리는 길을 재촉하였지만 마침 그 날이 토요일이라 안내해준 지역에 도착하여 타이어를 가는 데는 실패하였습니다.  퇴근 시간을 칼 같이 지키는 사람들이라 몇 십분 늦게 가 보니 이미 문이 닫혀있었고 방법이 없었습니다.  주님만 의뢰하며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여정은 타이어 걱정할 겨를도 없이 또 다른 문제가 저희를 괴롭혔습니다.  차에서 계속 열이 나서 멈추어 서서 물을 붓고 식히는 일을 반복하였습니다.  어쨌거나 그날은 7-8시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무려 12시간 이상을 가서 1차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안도와 감사의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피곤한 몸을 쉬었습니다.
다음날 다시 여정을 시작하였고 처음 몇 시간 동안은 문제가 없는 듯 하여 아주 기뻤으나 아 드디어 올 것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다시 차에 열이 나기 시작하였고 어제와는 달리 이제는 잘 식지 않았습니다.
식수로 준비했던 물을 차에 다 부었지만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추운 내륙지방 산 속을 지나는 중에 비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차는 우리를 봐 주지 않았고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멈추고 물을 부어야 했습니다.  이 일도 잦아지자 준비한 물조차 떨어지고 아이들이 비를 맞으며 차에서 내려 땅에 흐르는 빗물을 받아 차의 물통에 부었습니다. 
열 번 이상 인내하며 이 모든 과정을 잘 다스리던 형제가 딱 한 번의 성급함으로 그만 물통 뚜껑이 날아가며 뜨거운 물이 얼굴과 손에 튀어 화상을 입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손목으로 얼굴을 문지르는 통에 손목의 피부가 거의 벗겨지고 남은 부분은 고무풍선처럼 물집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너무나 놀랐지만 준비한 응급약품 중에 화상 거즈가 있었기에 찬물로 상처를 식히고 화상거즈로 감싸 매었습니다.  그렇지만 화상의 통증이 너무 심해 형제는 아주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우리를 안심시키려 별일이 아니라고 계속 주장했습니다. 결국 진통제를 먹고 고통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도망가버린 물통뚜껑을 찾아야 했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산 속의 도로에서 비를 맞으며 여기저기 뚜껑을 찾았습니다.  형제가 지혜롭게 차를 조금 뒤로 물리면서까지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는데 기도하며 애를 태우다 다시 보니 뚜껑은 멀리 가지 않고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불행 중에도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멈추어 서 있을 수 없는 곳이었기에 어떻게든 가야 했습니다.
조금 더 가다가 주유소를 발견하고 물을 얻으러 갔습니다.  모슬렘 주인이 우리를 맞았고 잘 도와주었습니다.  우리 처지를 듣고는 조금 큰 다음 도시를 알려주고는 그 곳에 있는 친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가 우리 차를 고쳐주고 우리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도시까지 가는 길은 모슬렘 주인의 말로는 산 고개를 두 번 넘으면 나온다고 했지만 우리 차의 형편으로 그 길은 너무나 멀고 험했습니다.
가는 중에도 수없이 차를 세우고 식히고 물을 붓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한번은 형제가 차를 효과적으로 식히기 위해 보닛을 조금 열어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아가서 뚜껑을 닫히지 않도록 콜라 캔을 하나 주워서 끼워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차를 몰아가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언덕이 마주 보이는 내리막에서 언덕을 올라갈 준비로 조금 속력을 내며 내리막길을 가는 중에 세찬 바람까지 한 몫을 하여 닫히지 않은 보닛이 날아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운전석 앞 유리를 힘있게 때렸습니다.
순간 앞이 캄캄하였고 차는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뒤에서 따라오는 차라도 있었다면 어쨌을까요?  일차선이었거든요. 차를 멈추고 정신을 차려보니 바로 뒤에 앰불런스차가 한 대 서서 우리 차를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향해 무슨 일인지 묻고 도울 일이 있는지 물었으며 한참 동안 우리 뒤에서 오는 차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고는 떠났습니다.
아 정말 난감했습니다만 멈출 수 없는 길이었기에 보닛을 닫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보닛이 심하게 우그려져서 닫히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몇 번의 시도 끝에 있는 힘을 다해 꽝 닫았더니 성공했습니다.  감사와 기쁨의 신음소리를 삼키며 다시 출발했습니다.  얼마 못 가 다시 서야 했고 또 차를 식히려 했으나 이제는 보닛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물을 부을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아빠의 고군분투를 지켜보는 아이들과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모두 응답되고 있다며 생애 처음으로 맞는 고난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위로했습니다.  다은이는 아빠가 평소 우리의 역경지수가 높아지도록 기도했는데 어제와 오늘 역경지수가 몇 배나 상승하고 있으니 이 역시 기도응답이 아니겠냐며 위로했습니다. 
고난 중에 가족들이 모두 한 맘으로 서로 격려를 하니 마음만은 평안했습니다.
기도가운데 어찌 어찌하여 모슬렘 사람이 알려준 작은 도시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가 소개해준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몇 번이나 전화를 하며 한 시간 이상 그 춥고 비가 오는 중에도 형제는 차 밖에서 그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날이 일요일 이었기에 그리고 이미 해가 기우는 시간이었기에 그 사람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그가 보냈다는 젊은 모슬렘인이 나타나서 우리를 돕겠다고 했으나 우리가 몇 가지 알아보느라 머뭇거리는 동안 참지 못하고 가버렸습니다.  우리는 또 다시 낯선 곳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날은 아주 어두워졌고 숙소를 찾아야 했는데 열이 나서 고생하던 차는 이제 라이트도 켜지지 않았습니다.  어둠 속에 불도 없이 낯선 도시에서 온도계에 빨간 불이 반짝이는 앞 유리가 왕창 깨진 차를 몰고 숙소를 찾는 우리 모습이 어떨까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이렇게 밖에서 밤을 지새다간 얼어 죽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지만 우여곡절 끝에 숙소를 찾았고 가격을 흥정했고 드디어 방에 들어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게다가 가져온 쌀을 찾아 밥을 짓고 라면도 끓여서 김치도 꺼내놓고 감격적인 식사를 했습니다.  사실 점심식사도 할 수 없었거든요.
 저녁을 먹으려는데 총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습니다.  놀라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태연히 그냥 총소리가 맞다고 하였습니다.  마치 일상인 듯 하였습니다.
그 B&B (bed 와 breakfast를 제공하는 숙소라는 의미)의 손님은 우리뿐이었고 일하는 사람도 흑인 여자 한 명뿐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저녁을 먹고 남아공에서 열리고 있던 대륙 별 대표들간의 축구시합의 결승인 브라질과 미국의 축구시합의 생중계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도움의 손길이 있었기에 우리 차는 우리가 지나온 큰 도시인 더반으로 끌려가고(약 300Km 떨어진 곳) 우리는 렌터카를 얻어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 때 이후로 우리는 아직 그 차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반에서의 소식은 약 4백만 원을 들여 그 차를 수리하던가 아니면 8십만 원의 고철 값을 받고 팔라는 두 가지였습니다.  그 두 가지 모두 우리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인데다 당장이라도 차가 없이는 생활할 수 없기에 기도하며 제 3의 해결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 참에 튼튼하고 평소 간절히 소망하던 7-8인승 차를 주시도록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렌터카로 차를 바꾼 이후 우리의 여행은 감사가 넘쳤습니다.  렌트비를 아끼려고 작은 차를 골랐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차는 잘 달리기만 하면 된다는 걸 뼈아프게 배운 후였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번 가족 축제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토록 오는 길이 험난해야 했단 말이던가?  이런 독백 속에 3박4일의 축제에 참가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행복한 부부학교에 입학을 했고 아이들은 각각 비전스쿨과 성경학교에 배속되어 각자의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열나고 애먹이던 차도 옆에 없고 모든 시간이 꿈처럼 흘러 갔습니다.
아이들도 그렇게 고생하며 온 보람이 있다고 하였고 저희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따로 배우고 느낀 바들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를 잘 도와주시는 한인 장로님의 배려로 저희는 어렵게 도착한 케이프타운에서 하룻밤을, 그리고 3시간 거리인 케이프 아굴라스에서 2박을 하며 가족만의 시간을 가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장로님의 부탁으로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 새벽시간에 300Km를 달려오셨던 분은 약 20년 가까이 이곳에 사셨던 경험에 비추어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중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는지를 설명해주셨습니다.  굳이 그 설명이 아니더라도 이미 우리는 그 어려운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셨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난의 시간은 곧 은혜의 시간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셈입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저희 가족은 더욱 밀착되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이 깊어졌음을 감히 고백합니다.  아빠의 책임감과 위기에 대응하는 태도는 정말 우리에게 감격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긍정적인 태도로 우리를 안심시키며 희생적으로 가족을 위해 모든 짐을 떠 맡는 영웅이었습니다.  희생적이고 탁월한 리더십이었습니다.  우리의 염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차로 가기로 결정한 것만 빼고는 너무나 듬직한 아빠요 남편이었고 우리 팀의 대장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빠가 이번 여행을 계기로 많이 변했다고 평가하고 있으니까요.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빠로서의 역할에 큰 변화가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사역과 관련해서도 많은 도전을 받고 신선해진 것도 보입니다. 
저희는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번과 같은 여행을 시도할 마음이 샘솟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신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거든요.
차 한대를 날려보내는 큰 대가를 지불하면서 느끼고 배운 바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귀한 것은 쉽게 얻지 못하는 법이잖아요.
그리고 형제의 화상도 아주 잘 나아가고 있습니다.  얼굴의 흉터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손목에도 핑크 빛 고운 새 살이 잘 돋고 있습니다.  그 기간 중에 하나님께서 항생제 연고도 공급해주셨고, 전문의사의 손길도 보내주셨고, 그리고 길거리의 야생 알로에도 한 몫을 했거든요.
저희가 부러우시면 남아공으로 선교하러 오십시오. 
<6월 기도제목>
1. <가족>                                                
1) 박 선교사 부부와 자녀들이 영적, 정서적,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안전하며 신선함이 가득하도록
   다은이가 몸무게를 많이 줄였는데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경건의 시간과 기도하는 일에 성실하며 진보가 있도록 또한 공부를 잘 감당하도록
2) 영주비자를 위해Retire Permit을 받아야 하는데 물질준비와 Permit을 얻는 일이 형통하도록.
3) 더반에 있는 차가 잘 해결되어지며 튼튼하고 안전한 7-8인승 차를 주시도록
2. <사역>
1)형제자매들이 성령님께 붙들려 은혜 속에 강하며, 모임을 편안해 하고, 우리 모임이 소문이 나도록(딤후2: 1-2, 사60: 22) 또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에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도록.
2)캠퍼스 주위에 언제든지 쉽게 모일 수 있는 선교 센터를 주시고 생활훈련관을 주시도록, 음푸말랑가에 땅을 갖는 일이 형통하도록.
3)프레토리아대학 성경공부 모임과 예배 모임이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복된 모임이 되도록
4)짐바브웨에 머물며 사람들을 돕기 시작한 타우형제에게 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시도록
3. <후원자, 후원교회>
1)박선교사 가정을 후원하는 교회들이 부흥하고 또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도록, 후원자들의 생업이
안정되고 가족들이 건강하며 믿음의 명가가 되도록.
2)투병 중에 계신 명 영정 장로님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회복시켜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