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tree 2008. 6. 26. 18:54



        
     
    마태복음 18장 21절-19장 1절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 18:24)결산할 때에 만 5)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마 18:25)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마 18:26)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마 18:27)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마 18:28)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6)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마 18:29)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마 18:30)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마 18:31)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마 18:32)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마 18:33)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마 18:34)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마 18:35)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탕감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하시며, 무조건적이십니다. 그런데도 마치 조건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죄의 용서에 관한 부분일 것입니다.
    “너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저희 아버지는 중년의 나이에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하시고 난 뒤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그동안 목재상을 경영하시면서 다른 사업체도
    많이 가질 정도로 꽤나 성공하셨는데, 부도가 난 뒤 우리 가족이 살던 건물도
    은행으로 넘어가고 셋방살이를 하실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죄의 용서는 히브리 말로 빚의 탕감과 같은 말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죄를 하나님께 빚진 것으로, 갚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때 아버지가 그 큰 빚을 갚을 수 있도록 누군가가 도움을 주셨다면
    아버지의 기쁨이 어떠했을까 생각해봅니다. 또 우리 식구들의 기쁨은
    어떠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고마운 분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려 들지 않았을까요?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눅 7:41
      ‘부채 탕감’ 캠페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에게 매년 막대한 금액의 이자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일어설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들은 이자를 지불하기에 충분한 수입이 없기 때문에 곤경에 처합니다.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 나라들의 교육제도, 의료 서비스, 그리고 산업은 발전하지 못합니다. 여러 기독교 자선단체들에서 부채 탕감 캠페인을 벌여서 꽤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자 이들의 노력에 주목하기 시작한 어떤 정부들도 나서서 부채 탕감을 단행했습니다. 예수님은 부채 탕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이 이야기는 그분을 정찬에 초대한 바리새인 시몬의 인색한 마음을 찔렀습니다. 시몬은 한 여인의 행동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죄를 지었으나 예수님에게 용서받았음을 믿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그녀의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씻겨드렸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그녀의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종종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용서의 선물이 개발도상국들에게 베풀어지는 부채 탕감과 같은 것임을 믿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눅 7:41-42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어떤 것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행하는 어떤 것 때문에 그분이 우리를 덜 사랑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그분은 우리에 대한 것들을 결정하셨습니다.
      때때로 당신은 속으로 “내가 정말로 다른 사람들만큼 하나님의 용서를 필요로 하는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만일 그런 적이 있다면, 당신의 마음을 보여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